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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20:27 from Something

 아름다운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원하는 사랑을 얻게 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의해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과 삼엄한 경계 속에 살아야 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간다. 특히나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한 순간도 좌절하지 않고 어린 아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위해 최선을 다했던 귀도, 가장 불행하고 처절하고 끔찍했던 시대에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성취감을 아들에게 남겨주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까지 맡아 어쩌면 감독이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보통의 다른 유럽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정서적인 측면에서나 사랑이든 뭐든 직설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했다고 느꼈지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는 기존의 영화와는 달리 사랑을 잔잔하고 스며드는 느낌을 줄 수 있게 표현하였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사랑이란 주제는 같지만 이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어필한 독일 출신의 영화감독 롤프 슈벨은 199년 글무미 썬데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었다. 처음 영화 포스터를 보았을 때 너무 인상적이어서 무척이나 보고 싶은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꽤 예전 작품이고 개봉당시 청소년은 볼 수 없는 영화였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야 DVD로 보게 되었는데 밤에 한 번 보고, 그 여운이 남아 아침에 일어나서 또 한 번 보고 말았다. 영화의 영향이 너무 커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입 속에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던 주제가 “글루미 썬데이”는 헝가리 청년 백여명을 자살로 이끌 정도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 남자가 반으로라도 나눠 같고 싶다고 애원할 정도로 매력을 가진 여자 주인공 일로냐, 가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한 안드라스, 마음이 넓은 자보, 비열함으로 가득차 불행한 말로를 보여주는 한스가 등장한다. 일로냐를 사랑하는 자보와 안드라스, 그리고 일로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한스까지 이 네 사람의 얽히고 얽힌 사랑과 유럽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인 나치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간다. 인간답게 살지 못할 바에야 죽는게 낫다는 말,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이 꼭 일대일일 필요는 없다는 조금은 위험하지만 이해가 되는 논리, 죄짓고는 못 산다는 아주 구태의연한 진리까지 조금은 직설적이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이런 영화를 롤프 슈벨은 만들어 냈다.

 롤프 슈벨은 후에 글루미 썬데이의 촬영, 편집, 음악 등 당시 제작진과 다시 모여 만든 블루 프린트라는 작품에서도 역시 글루미 썬데이가 보여줬던 직설적인 묘사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보여준다. 글루미 썬데이의 일로냐를 반이라도 가지겠다던 강한 욕망을 블루 프린트에서는 영원한 재능을 위해 또 다른 분신이라도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가진 교육열에 견주어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자신이 이룬 것 혹은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대신 이룰 것을 강요하며 교육시키는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 그리고 그것을 부모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자라지만, 훗날 어머니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이기심에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느낀 반항심을 가진 딸과 이에 반해 젊고 재능 있으면서 자신과 닮기까지 한 딸에 대한 어머니의 질투, 그리고 어머니의 복제품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딸의 절실하고 절실한 욕구가 얽혀 영화는 전개된다. 후에 늙고 약해진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엄마에 대한 미움을 접어두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딸을 보며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사랑과 블루 프린트의 어머니와 딸 사이의 사랑을 보면서 다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같기도 한 부모와 자식 간의 땔래야 땔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유럽의 사랑 영화가 언뜻 보기에 무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닌 작품도 있다. 가볍게 보이지만 보게 되면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유럽의 사랑영화 아멜리에가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장 피에르 주네는 마르끄 까로와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장 피에르 주네는 영화장면을 마치 광고를 보는듯한 감각적인 시각적 스타일로 나타낸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초기에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TV광고 등을 작업하면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멜리에로 남녀간의 사랑을 독특한 시각으로 나타낸 장 피에르 주네는 말도 안되는 우연들로 당황스럽기까지 하지만 프랑스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독특한 몽환적인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아멜리에는 어쩌면 오드리 또뚜라는 배우의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감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장면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창의적인 화면 연출이 오드리 또뚜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멜리에는 작은 사건들과 사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쉽게 좌우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어려워한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은 프랑스의 감독이다. 프랑TM 영화에 대한 평점을 보면 보통 극과 극인 경우가 많다. 좋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인가 기괴하기도 하고 이상한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말을 많이 한다. 기괴하기도 하고 이상한 영화라고 하면 아멜리에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상한 느낌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신선하게 느껴지게 하는 아멜리에라고 생각한다. 남자 주인공인 니노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가 가지고 있는 취미는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 증명사진 모으기, 발자국 모으기 등이다. 이런 니노는 아멜리에와 공통점이 많다. 아멜리에가 용기가 없어서 오히려 더욱 치밀하게 간접적으로 니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낄지도 모르는 두 사람간의 사랑을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은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장 피에르 주네는 델리 카트슨,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등에서도 역시 같은 동화적인 이미지로 접근했었다. 파리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중에 한 명인 장 피에르 주네는 총 9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중에 단 4편만이 장편 영화이다. 주류 감독에게 4편의 장편 영화라는 것은 적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오히려 더 적은 작품 수 때문에 영화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기고 영화를 값지게 느껴지게 하고 돋보이게 한다.

 폴란드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피아니스트는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로만 폴란스키 개인의 사생활은 어쨌든 뒤로하고 그는 폴란드 거장 감독이다. 유태계 폴란드인을 부모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어린 폴란스키는 전국을 전전하면서 도피생활을 했다. 이처럼 어두운 과거가 후에 공포와 집념이라는 그의 영화의 특징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인 피아니스트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고 비인간적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그러한 비인간적인 행동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나타내기도 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기애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피아니스트에서는 이러한 자기애의 관점에서 사랑을 나타내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필만은 그저 약하기만 한 유태인 개인일 뿐이다. 그는 정말 단 한 번도 나치에 대항하여 정면으로 맞선적이 없으며 영화 내내 끝없이 도망다니고 피하고 숨고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는데만 정말 온 힘을 다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점은 그동안 보여준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대조적으로 정말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에게 직접 일이 닥치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진실에 좀 더 관객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그의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갔을 때 그는 혼자 살아난 뒤 그저 조용히 숨어지내다가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노동시설로 들어간다. 노동시설 안에서 유태인 동료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비밀리에 땀흘려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시설을 나가기에만 목멘다. 그 노동시설을 탈출하여 피난처에 있는 동안에도 그가 노동시설에 있던 동료들의 반란을 그저 치켜보기만 하면서 반란이 진압되는 순간까지 동료들을 외면한 주인공은 어쩌면 관객들에게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오히려 관객에게 기존의 비현실적인 주인공의 활약과 대조적으로 동질감이라는 키워드로 어필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의식주는 자기애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자신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피아니스트는 마찬가지로 가장 원초적인 사랑을 나타낸 작품이었다.

 위에서 알아본 남녀간의 사랑, 부자, 모녀, 자기애를 주제로 한 유럽영화 대부분의 큰 공통점은 유럽인 자신들이 어쩌면 가장 아프게 느낄지도 모르는 나치주의이다. 원인을 제공한 독일이나 피해의 당사자인 유럽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은 자극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영화의 흥행을 위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영화의 흥행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영화에서도 비슷한 아픔인 남, 북간의 분쟁은 영화의 대박 행진에 도움을 주었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JSA 등 큰 흥행을 일으킨 영화들은 대한민국이 가진 아픔이라는 자극적인 요소를 영화에 사용하였다. 이처럼 유럽 영화에 있어서 나치주의는 영화에 이용함으로써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하여 좀 더 다가가려고 한 유럽감독들의 발버둥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Posted by 베리머치 트랙백 0 : 댓글 0